꿈은 꾸는 것인가? 꿔지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꿈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 잠자리에서 꾸는 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자리에서 꾸는 꿈도 내가 꾸는 꿈을 꾸는 것이 다반사이다.
꿈은 자기가 목표를 정하고 설계하여 가지는 것 같지만 목표를 정하거나 설계를 한 일도 없는데 어느새 뭔가가 나의 꿈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꿈은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꿀 수 있다.
어떤 과정으로 나의 꿈이 되던, 꿈은 꿀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하건대
<꿈은 꿀 가치가 있다.>
30년도 이전에, 그러니까 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을 때부터 성도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동생활가정 꿈을 꾸었다.
그리고 지금 <새사람공동생활가정>이라는 이름을 붙인 집을 갖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이 집을 갖기 전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다만 희망이라는 꿈으로 밖에는.
30년 이전의 꿈을, 10년 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렸고, 7년 전에는 방 둘에 작은 거실 하나를 마련하기 까지 했었다.
10년 전에 새사람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새사람공동체 소식지 창간호에 발표했던 꿈을 여기에 옮겨본다.
새사람공동체의 10대 목표
1. 이동목욕차 운영. 2. 재가 서비스 3. 주간 및 단기 보호소. 4. 생활보조금 지급. 5. 의료서비스. 6. 납골묘설치. 7. 무료급식소. 8. 이, 미용서비스. 9. 어르신대학. 10. 양로원설립.
10년 전에 시작한 <새사람공동체>와 2년 전에 시작한 <새사람노인재가센터>와 8월29일에 감사예배를 드릴 <새사람공동생활가정>을 통해 10대 목표는 어느 정도 기초를 잡아 가게 될 것이다.
새사람공동체 소식지 2003년 봄 호에는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도 실었다.
이 프로젝트가 자리를 잡으면 인접 터에 노인들을 위한 집을 새로이 지을 예정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대가족이 모여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도우며 살아가는 대가족을 이룰 생각이다.
이런 공동체를 복지 용어로 「그룹 홈」(group home)이라고 한다. 나는 그룹 홈의 식구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보고 섬겨서 그들로부터도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런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새사람공동체 회원님들께서 따뜻한 사랑을 제 가슴에 부어주심으로 이미 나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빚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많은 분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자연이 주는 사랑과 자연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욱 더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빚어져 가기를 소망한다.
부디 사랑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 인생길 가는 동안 나와 연을 맺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새사람공동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꿈은 정말 꿀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통해서도 꿈은 꿀 가치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의 이름은 <강산>입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복음을 널리 전하라고 제가 지은 이름입니다. 그 아들은 지금 신학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인데 열심히 공부하며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딸의 이름은 <샘>입니다. 항상 맑은 물을 솟구쳐 내는 샘처럼 항상 사랑을 솟구쳐 내어 어려운 이웃들을 시원하게 해주라는 간절한 소원을 담고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 딸은 지금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 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참으로 싹수가 있는 아이입니다.
이원익은 꿈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전망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것인가,
하는 얕은 생각이 아닌, 내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일인가에 답할 수 있는 것을
나는 꿈이라고 부르고 싶다.”
30년 전부터 꿈꿨던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이 전망이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인가 하는 얕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이 아니라 그냥 걸고 싶은 꿈이었다.
그 꿈이 나에게 부를 줄 것인가, 명예를 줄 것인가와 상관없이 내가 바라던 꿈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 일인가.
나는 생각한다.
<꿈은 꿀 가치가 있다.>
내 생각과 경험으로 말한다면 꿈은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목적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비게이션이 작동을 해도 목적지가 입력되어 있지 않으면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는 대로 그 앞길만 안내한다.
그러나 목적지가 입력되어 있으면 어찌하든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잡아준다. 잘못 나갔으면 수정하여 바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인생길 가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꿈이 있으면 그 꿈 쪽으로 핸들을 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으면 방황하지 않고 더 쉽게, 신속히 그 방향으로 핸들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꿀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꿈은 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 꿀 수 있는 최대의 꿈은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꿈이다. 그 꿈처럼 원대하고, 소망차고, 아름다운 꿈은 없다.
꿈을 꾸자!
<꿈은 꿀 가치가 있다.>
새사람교회 이영국 목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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