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교회 성도 여러분 !
4월 14일-18일은 고난주간,
4월18일 금요일 저녁 8시 -설 교: 정상직 부목사
세족식: 류현택 목사
20일(주) 부활주일입니다. 칸타타 , 만찬식
오후 : 특별찬양, 간증시간.
새벽기도 말씀: 담임목사/ 찬송인도:조용로 집사 /
4월 13일 (주일) 종려주일 화려한 예루살렘 입성 |
말씀 마21:1-11(참조 11:1-11, 눅19:28-40, 요12:12-19)
“ ...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나가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성으로 공공연히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다. 왜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을까? 제자들도 환호하던 군중들도 예수님의 이 행동의 참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이는 스가랴 선지자가 오래 전에 메시야 오심에 대한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9:9)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시된 성전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등의 죄악이 가득차 있음을 보셨다. 다음 날 예수께서는 이처럼 더렵혀진 성전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 채찍을 드셔야 했다.
오늘의 묵상
1. 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용기를 생각해 봅시다.
2. 오늘 내 마음 속을 우리 교회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보신다면 무엇을 느낄실까? 우리 자신과 교회를 살피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4월 14일 (월요일) 성전을 청결케 하심 |
말씀 마21:12-17절(참조 : 막11:15-19, 눅 19:45-48, 요 2:13-22)
“...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따 먹고자 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당시 성전 안에서는 명절때 희생의 제물로 쓸 짐승과 향유, 그 밖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였고, 성전 안에서만 쓰는 유대 화폐를 교환하여 주곤했다. 그래서 성전은 완전히 시장과 같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때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내어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으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막 11:17)하셨다.
예수님은 참 제사장의 자격으로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를 깨끗케 하신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 우리 자신과 주의 몸된 교회,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이 세상을 성결케 하시려는 주님의 거룩한 분노였다.
오늘의 묵상
1. 나의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없는 나무와 같지는 않은가요?
2. 하나님의 성전을 참으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3.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롭지 못한 일을 보았을때 거룩한 분노를 느낄 수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4월 15일 (화요일) 과부의 두 렙돈 교훈 |
말 씀 막12:41-44(참조 눅21:1-4)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예수께서는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것이라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셔서 그들의 헌금넣는 것을 지켜 보셨다. 때가 마침 유월절이라 전국 각처로부터 많은 참배자들이 모였고 또 많이 헌금하는 자도 있었다. 이 때 예수께서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를 기뻐하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과부의 적은 헌금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신앙의 핵심은 풍부한 양과 화려한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중심과 순수한 본질에 있음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헌신의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신다.
오늘의 묵상
1.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방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헌금은 어떤 것일까요? (고후9:7, 8:12)
3. 다음의 말씀을 명상합시다. “많은 사람들은 지갑으로만 바쳤지만 그녀는 마음으로부터 바쳤습니다. 이는 습관을 좇아드리는 것과 사랑으로 드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4월 16일 (수요일) 한 여인의 헌신 |
한 여인의 헌신
말 씀 : 마 26:6~13 (참조:막14:3-9, 요11:45-53)
“...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 ..”
오늘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린다.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과 수치에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마리아는 대담하게 향유 한 병 모두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다. 이 향유는 매우 비싸고 값진 것으로써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다.(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 여인이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을 헌신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기의 머리털로써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다.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충동을 본다. 제자들의 불평과 비난 속에서도 예수께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칠줄 몰랐다. 이 일을 주님께서 칭찬하셨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담하게 진실한 사랑을 바쳐야 한다.
오늘의 묵상
1. 내가 귀히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주님을 위하는
데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요?
(시간? 재능? 재물?...)
2.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주님의 일을 하
는데 주저한 적은 없었나요?
3. 마리아가 만일 향유의 값을 생각하고 망설였다면 주님의 장래를 준비
하는 영광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욕심떄문에 주님께 대한 봉사의 기
회를 잃은 적은 없었나요?
4월 17일 (목요일) 과부의 두 렙돈 교훈 |
최후의 만찬
말 씀 : 마 26:17-30 (참조 : 막14:22, 눅22:7-20, 요13:26-30)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반 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다. 이때 스승이신 예수께서 수건을 허리에 두루고 대야에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이것은 종으로서 봉사하는 모습을 본으로 보여주신 것이며 오늘 제자로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와같이 행하라는 요청이다.
그 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다. 이때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을 희생해 제자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실 것을 말씀으로만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일로 나타내셨다.
잡히시기 직전 슬픔과 심한 고민을 빠진 예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하였으나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깨어 당신을 본받고 증언할 것을 원하신다.
오늘의 묵상
1. 오늘 내가 종으로서 봉사하는 자세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2.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속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3.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살겠노라 하면서 제자들처럼 졸고 있는 것은 아
닌가요?
4월 18일 (금요일) 과부의 두 렙돈 교훈 |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말 씀 : 마 27:45~56(참조:막15:16-41, 눅23:44-49, 요19:28-30)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끝까지 자기를 바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을 명상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하자.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라
”(눅23:33-34) 십자가에 못을 박고 침뱉고 창으로 찌른 자도 능욕하고
저주하고 비웃었던 자도 우리 주님은 용서하셨다.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
2-43)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을 주신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보라 네 어머니다.”(요19:26-27)
인간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 주셨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
나이까?)”(마27:45-46) 우리의 구속과 영생을 위한 예수님의 거룩한 절
규이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이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거룩한 희생으로 모든 죄를 속하셨다는 하나
님 어린 양의 승리의 외침이다.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바쳐 살아오신 예수님의 삶의 결론이다.
오늘의 묵상
1. 용서함 받은 우리 역시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요?
2. 제자의 길은 반드시 십자가에의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4월 19일 (토요일) 과부의 두 렙돈 교훈 |
무덤 속의 예수
말 씀 : 마 27:57-61(참조 : 막15:42-47, 눅23:50-56, 요19:38-42)
“...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청하여 자기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이제는 관헌의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용기있게 행동했다. 그는 당당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 인도를 요구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 계셨다. 어느 누구도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처럼 죽었고 무덤속에 묻혀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악의 권세를 물리치시게 되셨다. 그는 무덤의 어두움을 제거하셨으며 그 공포를 영원히 쫓아 버리셨다. 죽음이 그 쏘는 살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그 위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셨다.
오늘의 묵상
1. 나는 남들이 주님을 외면할 때도 요셉과 같이 용기있게 주님을 찾고
따를 수 있나요?
2. 죽음이 있었기 떄문에 부활이 있었습니다. 무덤 속에 장사지내야 할 내
죄의 목록을 생각해 보세요.
3.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4. 예수를 무덤에 장사지낸 이들의 슬픔이 부활을 목격한 후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0개